지난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박 4일로 제주도 모녀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나기전 마냥 설레기보다는 걱정도 조금 되었다. 내게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김여사 님은, 여태껏 생계에 치여 여행이라는 걸 계획하고 떠나본 적이 없으신 분이다. 둘재딸인 내가 독립까지 마치고 당신은 위한 시간과 돈이 생겼음에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던 분이다. 옷도 매번 이상한 것만 사 와서 짜증을 내곤 했다. 그런 게 당연했다. 엄마는 당신을 위해 예쁜 옷을 쇼핑해 본 경험도, 즐겁게 친구들과 혹은 가족과 여행을 떠난 적도 전혀 없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현대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지내는게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짜증을 내면서 엄마가 쓰시겠다는 슬라이드 2G 폰을 억지로 스마트폰으로 바꿨고 (2016), 부산에 1박 2일로 여행을 갔고 (2017), 일본 도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2019), 컴퓨터 학원에 등록시켜 드려서 인터넷을 배우시도록 하고 (2020), 단 둘이 3박 4일이라는 일정동안 제주도 여행 (2021)을 다녀왔다.
이제와 서야 엄마는 여행이라는 것, 인생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고, 즐거움을 찾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그건 전체 일정 중 10% 가 채 되지 않는 지분이고, 나머지 90% 는 좋은 것 보고 손잡고 걸으면서 즐겁게 보냈다.
이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엄마는 현대사회에서 즐거움을 찾고 사는 데에서는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언제나 어른으로만 보이던 어머니가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것은 자식 입장에선 너무나 속상하고 슬픈 경험이더라. 특히 50대이신 엄마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전혀 못하실 땐, 인터넷뱅킹을 모르셔서 20분 거리에 있는 ATM에 단돈 몇십만 원을 이체하기 위해 가시는 것을 볼 때, 인터넷으로 장 볼 줄 모르셔서 생수 2L짜리 6병을 지고 오실 때, 마음이 답답하고 목이 쿡 막히는 심정이었다.
자식들 다 해외에 있게 되는데, 아무리 우리가 자주 오고 챙겨드리려고 해도, 이런 일상의 작은 일들까지 모두 덜어드릴 수가 없는데, 심지어 스스로 하실줄도 모른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정말 짜증을 많이 냈다. 대체 왜 안 배우려고 하시는 거냐고, 다 큰 어른이 새로운 걸 뭘 그리 두려워하시는 거냐고, 그런 속상한 말도 했다. 그런 말들은 우리에게돟 우리의 관계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건방지지만 나는 엄마의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엄마는 분명 강한 분이다. 하지만 현대 사외의 IT 기기들이나 여행 이런것들에 있어선 경험치가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내가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드리고, 잘 이해하셨는지 확인하고, 시범도 보여드리고, 그렇게 차분하게 가르쳐 드려야 한다고 느꼈다. 엄마께서 내가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였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 기르셨을 때를 되새기며.
그렇게 떠난 제주도 여행, 나는 공항에서 체크인하고 보딩하는 것, 호텔 체크인 와 카드키를 대고 엘리베이터 층수를 찍는 것, 네이버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는 것 등을 가르쳐 드렸다. 엄마는 열심히 배우시려고 했다. (귀여우심 ㅋㅋ) 차분하게 설명드릴수록 엄마도 한결 편안하게 느끼고, 모르는 것들이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내시는 것 같았다. 다그치고 등 떠민다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닌데, 왜 그리 재촉질 했는지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엄마와 함께 배우고 알려드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건강하시게 제주도 여행을 즐기고, 우리 딸이 모델 같다며 자랑하시는 팔불출 엄마.
딸내미가 더 엄마와 시간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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