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10522 퇴사; 삼성동 안녕!

홍니버스 2021. 5. 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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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나던 풍경,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신기하다. 

전 직장에 다닐 때 나는 항상 삼성동에 있는 외국계 회사로 이직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왠지 모르겠지만, 도심공항타워, 트레이드타워, 아셈타워는 내게 여의도 금융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IT 회사 중 본사를 해외에 둔 많은 회사가 삼성동에 있으니까, 괜한 삼성동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직할 때 삼성동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간다고 하니, 전 직장 친했던 분들은 그렇게 외국계 간다고 하더니 가는구나?라고 하셨다.

로망은 깨졌다.

사람사는 건 다 똑같지. (ㅋㅋ) 다른 회사는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했던 회사는 기대했던 만큼 글로벌 본사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겐 영어로 된 본사 자료를 보거나, 웨비나 들을 때, 보고할 때 영어로 하는 것 외에 기대했던 외국계의 특별함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심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정말 힘들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지만 사실 내게는 사람들이 안 맞는 게 너무 힘들었다. 상사와는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계여서 큰 마찰은 없었다. 실무진이 더 힘들었다. 그나마 잘 맞는다고 느낀 사람들이 이직을 하면서 외롭고 답답한 느낌을 매일 느껴야 했다. 회사는 일만 잘하면 되지,라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 맞는 사람 한두 명 있으면 숨통이 트인다. 근데 그게 불가능했다. 이 회사 사람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랑 맞지 않았다. 아마도 그 사람들의 기준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만큼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존중!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길 바라지만, 다시 다같이 일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첫번째로, 경력직으로 이직은 자신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경력직으로 직급 달고 하는 첫 이직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있었다. 혹시, 내가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부분이 제일 컸다. 신입사원이라면 소프트 스킬과 잠재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지만, 경력직이고 영업/마케팅 분야라면 성과가 숫자로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사 첫 해에 팀 퍼포먼스 +15%가 되었고, 내가 맡은 섹터 매출도 +20% 를 달성했다. 구조적으로 운이 좋았던 면도 있지만, 코로나와 입사 첫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해주고 싶다. 

두 번째로, 좋은 이력이 되었다. 국내에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글로벌 마켓에서 유명한 회사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글로벌 커리어를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좋았지만,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 중소기업의 이력은 글로벌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확실히 지금 직장으로 이직하고 나서, 링크드인에서도 더 큰 글로벌 IT 회사들의 채용담당자들/헤드헌터들에게 연락을 받곤 한다. 이런 메시지들은 최종 offer 가 아니고, 그냥 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깨가 으쓱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그들의 레이더망 밖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어쨌든 그들의 레이더망 안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통장 잔고가 늘었다. IT산업으로 다시 이직했을 때 나의 월급은 세후 180만 원이 안되었다. 그 돈으로 자취를 하며 살려고 하니, 매월 아무리 아껴도 저축할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연봉은 오를 테니까!라고 생각하고 큰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그래도 분명, 매 월 저축통장으로 돈을 이체할 때 한 번씩 한숨은 쉬었던 것 같다. 이직을 하면서 연봉이 인센티브 포함 68%, 미포함 40% 가 올랐다. 전 직장에서 연봉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중소기업 비슷한 연차/직급의 평균 정도 연봉으로 올린 것 같다. 덕분에 통장 잔고가 이직 전과 비교해서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내 힘으로 독일행을 갈 수 있는 기초자금 정도는 마련하게 되었다.  

로망은 로망으로 두는게 가장 아름답다는데, 삼성동에 대한 로망은 대부분 깨졌지만 이 또한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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