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10501 (또) 퇴사한다고 했다. 첫퇴사의 기억.

홍니버스 2021. 5. 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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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퇴사다.

이번엔 비교적 처음보다 차분하게 퇴사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잘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첫 퇴사는 2016년 1월이었다. 당시의 퇴사는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첫 직장을 다녔고, 장기적인 커리어와 적성을 이유로 퇴사하고 싶었다. 그때쯤 석사를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고, 비겁하지만 대학원을 갈 거라는 거짓 핑계를 대며 퇴사를 한다고 했다. 

나는 첫 퇴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처음 회사를 다닌 건 2013년 10월, 23살일 때였다. 2016년에 몇몇 친구들은 취업을 해서 적응해가고 있었고, 공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퇴사 해 본 친구는 없었다. 몇 살 차리 나지 않는 선배 들고 마찬가지였고, 물어볼 곳은 인터넷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보통 이직을 할 때 퇴사 한다는데, 난 이직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핑계를 찾아보니 건강상의 이유, 혹은 대학원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대학원 은 먼 미래였고, 당시에는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직도 정해진 것도 아니고.. 결국 무엇을 말하든 거짓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안되나? 했는데, 인터넷에서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퇴사 절차가 더 길어지고 힘들어지니 딱 잘라 댈 수 있는 핑계를 대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난 대학원에 갈 거라고 했다. 

퇴사를 결정했던 때로부터 1달 전에 얘기하는게 매너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연차가 많이 남아서, 최종 퇴사 일자로부터는 거의 1.5달 이전에 사수에게 먼저 퇴사를 한다고 했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목소리가 떨리고, 굉장히 긴장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마치 첫 면접을 보던 때처럼. 

그 때 내가 담당하던 프로모션이 있었는데, 그 준비까지는 함께 마무리라고 후배에게 인수인계하고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3월까지 일해달라고 했고, 나는 2월까지 하겠다고 했다. 서로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거의 퇴사 직전까지 일자를 밀고 당기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보다 2살 많았던, 6개월 먼저 입사를 했던, 그 사수는 어차피 이직해도 같은 업계에 있을 텐데 그럼 평판도 중요한데 잘 생각하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통보 시점부터 퇴사까지 1달 사이 계속해서 회사에선 몇 번이고 불려 가서 3 월까지 더 하라고 하고, 난 할 수 없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반복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졌으니까. 처음이니까, 퇴사 다 이런 걸까? 많이 힘들어 했다. 

그때의 첫 퇴사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 되었다. 왜 난 좀 더 당당하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했을까? 좀 더 나답게 솔직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나올걸. 그런 후회가 남아있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운 거겠지만, 만약 아는 동생이 퇴사 한다면 당당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 인생 살러 가겠다는데, 뭐. 하는데까지 마무리는 최선을 다 해서 하되 죄인처럼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할거다. 

두 번째 퇴사는 작년 초였다. 이직이라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고, 그간 바쁜 일을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해온 것을 인정해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때의 퇴사는 어렵지 않았다. 마음이 아쉽고 허전해졌을 뿐이다. 정말 아끼는, 고마운 사람들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 퇴사 과정은 스무스했다. 퇴사 일자로부터 1달전에 통보했고, 실제 근무는 2주만 더 했고 나머지는 잔여 연차 소진을 했었다. 마지막 날에도 난 6시 퇴근을 했다. 커다란 내 키보드를 들고 나오며, 다음 주에는 볼 수 없는 우리 사람들을 떠나는 게 정말 슬프고 아쉬웠다. 좋은 퇴사였다. 그리워할 사람들이 있다니. 

세 번째 퇴사는 그저께 통보했다. 이번에도 석사 유학이라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회사는 처음엔 핑계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최종 합격이 되었고, 출국한다는 내용을 다 이야기하고, 실제 근무는 2주만 더 하겠다고 했다. 이른 감이 있다고는 하셨지만 이 회사에서도 퇴사 절차를 진행해주시기로 하고, 그동안 잘해주어서 고맙다며, 졸업하고 돌아와도 된다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다니는 동안엔 여러 에피소드도 있던 곳이었는데, 나가는 길은 서로 좋게 좋게 마무리하는 중인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또 퇴사를 한다. 

5년 반의 경력을 안고 공식적으로 학생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첫 퇴사 다음날 갔던 미국 여행. 그랜드 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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