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30320 독일 석사 마지막 학기 시작 근황: 결혼 & 논문 시작

홍니버스 2023. 3. 2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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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근황을 올리고 3주 사이 큰 변화가 2가지 있었다: 결혼 및 논문 시작. 그래서 누군가 근황 물어볼 때마다 "아, 논문 시작했고 결혼했어"라고 하는데, 듣는 사람이 더 놀라며 "두 가지를 한 번에 했다고? 기분이 어때? 아, 아니 일단 축하해!!!" 하고 당황하는 상황이 종종 생기고 있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근 1달 사이에 50번은 들은 것 같은데, 거두절미하고 답하자면 '이전보다 약간 더 안정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선 결혼에 대해서. 2주전 우리는 독일 시청에서 직계가족과 증인이 되어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결혼을 했다. 피로연과 한국 예식을 졸업 후 따로 진행할 테니, 이 예식은 우리의 가장 작은 결혼 행사였다. 하지만 처음이자 공식적인 결혼 행사였다는 점에선 시청 결혼식이 다른 2가지 이벤트보다도 의미 있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혼 전에도 전반적으로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왔기 때문에, 극적으로 삶이 바뀐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남편이 들으면 혹시 서운할까 싶었는데, 그이도 비슷하게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만난 지 4주년 되는 날에 결혼을 했는데, 사실 이건 챙겨야 하는 기념일을 줄이기 위한 전략과 조금의 Cool 함이 가미된 선택이었다. 오히려 듣는 사람마다 정말 로맨틱하고 의미 있다고 해석을 잘해주셔서 민망할 따름. 남편은 올해는 내 소득이 남편보다 적을 예정이기 때문에, 세금 감면 혜택을 조금 누릴 수 있겠다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치다. 그러다 그가 살짝 민망해할 때 나는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나도 졸업 후 체류허가를 구직이나 취업으로 바꿀 필요 없이 독일인 배우자 체류허가로 독일에 체류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뻐." 이런 거 부창부수라고 하지 않나. 굉장히 실리적인 남편과 아내다. 이런 우리를 보고 한 측근은 "너희처럼 안 로맨틱한 커플은 처음 봐!" 하고 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로맨틱한 편이다. 서로의 안부를 가장 우선으로 챙기고, 누군가 아프면 안 아픈 이 가 군말 않고 돌봐주며 집안일을 책임지고 (잔병치레가 없는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은 들지만), 피곤했던 날 저녁에는 등을 쓸어주면서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집에 오는 길 튤립밭에서 3유로 주고 꽃을 사 와서 전해주는 순간들이 우리의 로맨틱한 순간들이다. 이 순간들은 아주 크진 않지만, 매일 서로를 조금씩 웃게 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당장 몇 년 뒤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 지조차 가늠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이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서로를 아끼면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아주 단단한 믿음이 있고, 서로에게 그렇게 하자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이게 곧 로맨스지! 

논문 시작은 계획했던 것보다는 조금 늦어졌다. 계획은 2월에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바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독일 돌아와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찌되는 2월 내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2월엔 도저히 체력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2월 초 시험까지 근 몇 달간은 주말/밤낮 상관없이 일과 공부를 하고 있었고, 바로 장거리 비행으로 날아간 한국에서는 3년 만에 모인 가족과의 순간 사이에 논문을 끼워 넣을 수가 없었다. 독일에 돌아 와서는 피로는 물론이고, 당장 2주 뒤 있을 시청 결혼식까지 아무런 준비를 못했었기 때문에 결혼 준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 음악, 부케, 옷 등 몇 가지 안 되어 보이지만 평소 이런 이벤트를 마련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겐 낯설고 피로한 과정들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청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다시 한번 긴장하고 결혼 준비를 했던 몸의 긴장이 풀려서 손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3월 중순이 되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이미 계획에서 1달이 미뤄졌을 뿐만 아니라, 내 목표는 3월 말까지 공식적으로 논문 등록 신청서를 내는 것이었다. 

진척은 없었지만, 시작이 반이라니 반부터 해보기로 했다. 별 진척은 없지만 지도교수님께 미팅을 요청드렸다. 일단 미팅이 잡히니 피곤해도 뭔가를 하게 스스로를 압박할 수 있었다. 간단히 개요 및 논문 조사 계획을 짜서, 지도교수님과 짧은 면담을 했다. 문헌조사도 좀 더 하고나서 면담을 하고 싶었는데, 왠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논문 등록은 학교 절차 적인 것이니 너무 구애받지 말고, 본인 속도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보자며 몇 가지 의견을 주셨다. 혼자서 이게 맞는 걸까? 저렇게 해볼까? 하고 헷갈렸던 부분이 교수님과 면담 후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래서 내가 이 분 수업을 가장 좋아하고, 이 분이 내 논문의 지도교수님이 되어주시길 바랐었지! 덕분에 그날 저녁부터 당장 어떤 부분부터 문헌조사를 하고 글을 쓸지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드디어 이번 주 몇 장을 작성할 수 있었다. 한 번 방향을 잡고 나니 어떻게 달마다 논문을 써나갈지 큰 그림을 더 확실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뭘 해야 할지 보이니 자신감이 생겼다. 석사 논문,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케, 전날까지 비바람이 불더니 결혼식 당일 해가 나고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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