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독일에서 유학을 할 계획이 있다면, 꼭 학생으로 일자리를 찾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외국어로 공부하면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혹시 독일에서 졸업 후 취업할 계획이 있다면 학생일 때 워킹 스튜던트 (혹은 Werkstudent) 나 인턴십 (혹은 Praktikum)으로 근무를 해보길 꼭 꼭 추천하고 싶다. 아직 나도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취업된 것이 아니지만 이 부분은 지난 2학기를 보내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빠르게 졸업하는 것이 한국에서만큼 중요하지 않다. 대신 제대로 졸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4년 걸리는 학사를 5년 한다면, 왜 휴학했는지, 늦게 졸업했는지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하고, 졸업 후 취업준비 할 때 신입사원으로서 나이의 상한선이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최근은 그 상한선마저도 내가 취업준비를 할 때보단 높아진 것 같다 (당시 여자는 27세가 소위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칼졸업 하면 2년 걸릴 수 있는 석사를 3년이 걸린다고 해서 왜 오래 걸렸는지, 나이가 많다든지, 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아직 못 봤다. 40대 이상이면 해당이 될지 모르겠다. 주변의 2030 친구들을 보았을 때는 본인이 합당한 이유 (개인적인 이유 포함)가 있고, 조금 더 오래 걸렸어도 본인 전공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확실하다면 취업을 하는데 큰 허들로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때문에 무조건 빨리빨리 칼졸업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가도 제대로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럼 제대로 독일에서 제대로 준비해서 졸업을 한다는 건 어떤걸까? 나는 이 3가지가 준비되었을 때 졸업하는 것이, 졸업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 계속 준비 중인 단계인 게 함정. 개인의견 입니다요.)
1. 본인 전공 지식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해도 커버 가능.)
2. 독일어 (영어로 석사하는 경우 포함, B1-B2 이상)
3. 독일 사회 경험
첫번째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독일에서 전공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문계열을 전공했어도, 본인이 따로 공부를 했다면 전공과 조금 동떨어진 직무에 취업하는 것도 종종 봤다. (e.g. 영어영문학과 학사 후 외국계 회계팀 취업). 그러나 독일에서는 학사 전공대로, 석사를 하고, 그 전공대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영어로 석사를 해도 독일어를 B1 이상 하길 추천한다. 출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독일 대도시 지역에서 영어만으로 취업 가능한 공고는 10~12%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외 영어 & 독일어 모두 요구하는 자리, 독일어만 요구하는 포지션, 기타 외국어 포지션이 있다. 나는 영어를 약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토종 국내파이다. 100개의 일자리 중, 10개의 영어 포지션이 있다고 쳤을 때, 토종 국내파인 내가 영어 원어민 혹은 어릴 때부터 제2외국어로 구사한 경쟁자들에 비해서 특별히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그 10% 정도의 소수의 일자리가 모두 양질의 일자리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때문에 영어 C1 & 독일어 B1-B2 정도 준비를 해야 양질의 일자리에 지원하고 나의 경쟁력을 어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사회 경험이다. 독일 구직시장의 인상은 검증된 구직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석사 프로그램의 동기들도 흔히 자조하는 것이, 독일 기업들은 젋고, 패기 있고, 경험 있으면서,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구직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만. 그 결과, 내가 공부하는 석사 프로그램 동기 30명 중 독일인 친구들은 거의 90% 이상 워킹 스튜던트 혹은 인턴십을 하고 있다. 취업하려고 할 때 나를 검증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점에 검증이 되어 있는 편이 더 일반적인 것 같다. '검증된'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쓰고 싶진 않지만, 잠재적 고용주인 독일 내 기업 입장에선 그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직설적일 것 같다. 아무튼, 이전에 인상 깊었던 동기와의 대화가 있는데, "독일 기업은 검증된 구직자를 원하는 경향이 강해서 처음에 외국인으로서 독일 기업에서 자리를 얻기가 힘들어. 하지만 처음 한 번을 얻고 나면 그 다음엔 훨씬 쉬워질 거야. 왜냐하면, 내부자가 되면 그 안에서 인터널로 공개되는 포지션에 지원할 수 있고, 네트워크를 쌓아서 소개를 받을 수도 있고, 그 회사에서 정규직이 되지 않더라도 추후 다른 기업에 지원했을 때 네가 독일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걸 보면 '아, 트레이닝되어있겠지.' 하고 합격하기가 수월해지거든. 어려워도 처음 한 번을 구하는 게 중요해!"라고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서 들은 말을 최소한 3-4번 이상 주변 독일인들 에게서 거의 똑같은 맥락으로 들었다.
한국에서 학사를 했다면 지극히 당연하게 빠른 졸업을 목표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경제적인 이유, 한국나이, 석사를 하면서 찾아온 번아웃 때문에 빠른 졸업을 생각 했었다. 석사 시작 전에 이미 2학기 근처에 워킹스튜던트를 해보자 라고 목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석사 시작을 하고 나서 쏟아지는 팀과제 때문에 언어 공부와 일까지 병행하기가 벅차 보여 자포자기 한 상태로 최대한 빨리 졸업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차분히 앉아서 프레임을 벗어나 생각해보니, 워킹 스튜던트/인턴십으로 일을 하면 소득이 생겨서 저축한 돈을 쓰는 것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독일어 공부할 시간을 벌며, 독일 사회 경험도 쌓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석사 전에 계획 했던 것으로 생각이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 다만 당초 계획은 칼졸업 하면서 워킹스튜던트를 하는 것이었으나, 이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학생 체류 허가가 2년 풀로 주어졌는데, 굳이 1.5년만에 졸업 하는게 아깝기도 하고. 그래서 계획보다 반년 졸업을 미루고, 학생 신분으로 있는 동안 일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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