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우울했다고 쓰기엔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대략 1.5일 정도 기운이 없는 정도였다고 표현을 하는 게 맞겠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2학기에 나는 팀프로젝트 2개를 들었고, 늘 그렇듯이 팀 프로젝트 기여도에 있어서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음에도 같은 팀원보다 낮은 성적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2학기 내내 성향이 맞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주었던 교수님 수업 2개였어서 "SHIT!!!" 하고 성적 열람을 하자마자 분노가 들끓었다.
이 교수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자면, 누구보다 권위적이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학생들 사이 분란을 일으키고, 이론 수업에 다른 교수님 슬라이드는 Ctrl+C/Ctrl+V 를 하시는 분이다. 오죽하면, 같은 독일인인 학생들이 못견뎌서 학기 중 학과장님에게 이 교수님에 대한 항의 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니, 이 분의 행동과 처사가 다소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건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고 본다. 현재 공부하는 학교에서 기회를 얻음에 매일 감사하려고 하는 나에게도 이 교수님은 아주 큰 스트레스 유발원이었다.
이번 팀프로젝트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다른 팀 프로젝트가 각자 1/n 몫을 해와서 합칠 수 있는 구조였던 것과 달리, 이 수업은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팀 프로젝트였다. 이 팀 프로젝트의 특성상, 프리라이딩은 꽤나 미연에 방지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단점은, 평가에 대한 형평성이었다.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를 하더라도 조인트 페이퍼를 쓸 때 다 같이 쓸 수는 없다. 때문에 1/n로 페이퍼를 나눠 쓰다 보면, 자연스레 더/덜 중요한 파트를 쓰는 팀원이 생기는데, 동등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덜 중요한 파트를 썼다는 이유로 더 낮은 성적을 받게 된다면 불합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기 중간부터 학생들 사이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문의했지만, 교수님의 대답은 "그때 가서 두고 보자." 라며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성적이 발표된 날, 명백하게 이 팀프로젝트에서 내가 한 역할이 큼에도 불구하고, 팀원보다 낮은 성적을 받은 것이다. 서베이를 배포하고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할 줄 아는 팀원이 없어서 혼자 독박 써서 주말 내내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당연히 Group grading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받게 된 성적이 팀원보다 낮다니? 심지어 발표 QnA도 혼자 대답했는데?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가는 성적이었다. 자신감 과잉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태껏 다른 교수님들 수업에서는 발표, 페이퍼, 구술, 서면 시험 모두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왔는데, 심지어 이 교수님이 준 성적은 평균 미만이었다.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멘붕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만, 바로 독일인 친구 M과 만나기로 해서 집을 나서야 했다. 일단 곧장 교수님에게 점수에 대한 피드백 메일을 보내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M을 만나서 쏟아내듯 이 억울함을 얘기하니, 독일 팀 프로젝트를 할 때는 너무나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친구도 독일 내에서 석사 이후 현재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팀원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었고 이의 제기를 해도 허무맹랑한 답변을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다른 팀의 친구에게도 상황을 물어보니, 부당하다며 피드백 세션/성적 정정신청을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그 교수의 여태까지 행태로 보아 피드백 세션으로 성적이 수정되리란 희망은 없을 듯하다. 애초에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이지만, 팀원 모두가 같은 성적을 받았다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는데, 왜 이런 분란을 "또" 조장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화기애애했던 팀 프로젝트 단톡방은 어색한 적막이 흐르게 되었다. 학교 Student Affair Service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항의해보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다음 학기 전필 수업으로 또 만나야 하는 교수님이라 지금 시점에서 이후에 껄끄러워질 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을 받은 날부터 다음날까지 아시사 식료품점에서 사 온 대만 과자를 깨작거리며 기운 없이 늘어져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받아들이는 중에 있다. 세상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일들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인생 처음으로 겪는 것은 아니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던 일들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예를 들면, 공들여 지원했던 뮌헨공대 석사 과정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단칼에 거절당하고, 담당자한테 이유를 요구했지만 거절에 대한 정당한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 이후에도 나는 잘 견뎌왔고, 내 인생을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 왔다. 이번 일도 그냥 그중 하나일 뿐, 마치 길가다가 튀어나온 작은 돌부리 같은 것일 뿐. 정신승리하면서 2학기를 마무리해본다. 혹시라도, 피드백 이후 성적이 수정되면 어떻게 이의 제기해서 성적을 고쳤는지 후기를 써보는 걸로. 화난 2학기 성적 열람 후기 끝.
'왕십리홍'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829 드릉드릉, 3학기 일일 계획 초안 짜는 중 (0) | 2022.08.29 |
---|---|
20220817 독학한 외국어로 사는 나 자신 관찰 일기 (0) | 2022.08.17 |
20220717 독일 석사: 2학기 끝 & 독일에서 2년차 (0) | 2022.07.18 |
20220512 독일 석사 취업 준비: 독일 대기업 워킹스튜던트 합격! (2) | 2022.05.13 |
20220502 독일 석사 취업 준비: 첫 면접 탈락 - 독일 IT 중소기업 세일즈 (0) | 2022.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