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20717 독일 석사: 2학기 끝 & 독일에서 2년차

홍니버스 2022. 7. 1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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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팀 과제 제출을 했고, 2학기가 끝났다! 아직 성적이 나오려면 또 1달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튼 수업 수강과 과제/시험은 끝났다.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보다 다사다난하게 보낸 덕분에 유난히 끝이 기다려지던 학기였다. 학기의 시작 때 세웠던 계획의 큰 부분들이 진행되지 않아서 바꾸다 보니 심적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모든 게 나에게 좋은 쪽으로, 순조롭게 흘러갔던 것 같아서 감사하다. 

 

1. 독일에서 외국인 학생인 나에게 조금 더 적응했다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적응이지만, 적어도 지난 10월 1학기를 시작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처음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마이크로 어그레션 (Micro aggression)을 당할 때 억울함과 분노를 어떻게 주체할지 몰라서 더 힘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마음을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덜떨어진 사람은 독일 아니라, 세계 어디든 존재한다. 미국인, 한국인, 중국인 등등 가릴 것 없이. 그리고 그 사회에서 현지인이 아닌 이상 이런 덜떨어진 인간들을 만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마다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려고 많이 노력했고, 이들의 생각을 내가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과는 빠르게 손절하며 지내고 있다. 나의 손절은 말도 섞지 않는 손절이다, Hi?라는 인사 외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고 싶지 않다. 그럴 시간이나 에너지가 있으면 나를 존중하는 사람에게 더 쓰고 싶다. 

그리고, 독일인들의 그룹에서 겉돌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이라는 주류로 살 때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겉도는 답답함을 느낄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독일인들 끼리는 누구나 아는 옛날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 만의 유머를 이야기하거나, 다 같이 옥토버페스트 독일어 노래는 떼창 할 때 나는 입도 뻥긋할 수 없다. 처음엔 이런 내가 너무 바보 같고,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그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그렇구나, 본인들끼리 재미있을 시간도 필요하지,라고 생각하고 흘려버리기도 했다. 

2. 독일에서의 삶을 좀 더 즐기게 됐다 - 나를 되찾고 있다

외국인으로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니, 삶을 즐길 여유가 조금 더 생겼다. 적응하겠다고, 더 좋은 성과를 내서 나라는 외국인을 그들에게 증명해보이겠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가장 친구가 힘들 때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위로해주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그런 친구로 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기 중에 발표가 끝난 직후 체코에 주말 동안 여행도 다녀오고, 다음 주에도 프랑스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이 나를 아껴주었던 것처럼, 이곳에서 내가 나를 챙기기로 마음먹고 조금 더 소소하게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내가 알던, 내가 좋아했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가끔 당당하고, 내 업무나 공부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과한 자신감이 있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사회 현상이나 경제 뉴스에 대해서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게 좋고, 남이 정한 룰을 따르느니 내가 만들고 말아 버리는 독립성, 문법이 틀려도 당당하게 외국어로 물어보고 요구하는 모습, 건강한 식습관을 갖고, 글쓰기, 새로운 것을 배우기, 운동하기를 좋아하는 모습 등등. 독일에 막 도착해서 잃어버렸던 나의 많은 모습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의 삶도 훨씬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1년이 버티기였다면 지금은 매일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3. 영어 발표, 페이퍼 쓰기가 늘었다

내적 성장 말고 하드스킬이 나아진 건 없을까 생각해보니, 영어로 발표하는 것과 리포트 쓰는 것이 훨씬 늘었다.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발표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발표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종종 후회했었다. 그런데 석사 하면서 외국어로 발표하는 연습을 하게 될 줄이야. 지금까지 학기당 4-6번의 발표가 있었다. 5-10분 내지의 짧은 발표지만, 첫 학기에 발표했을 때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영어로 한 글자도 틀리기 않기 위해 스크립트를 써서 달달 외우곤 했다. 그렇지만 문장을 통으로 외웠는데 발표에서 꼬이면 그게 더 수습하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이제는 중요 키워드만 적고 발표 문장을 스스로 만들면서 연습하는데, 이렇게 하니 현장에서 훨씬 매끄럽게 말할 수 있었다. 스크립트를 흘끗거릴 것 없이 청중의 눈을 보면서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퍼 쓰기도 여전히 문법적 실수가 많지만, 1학기 때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 것 같다. MS word 스킬도 늘었고, 인용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학사를 했을 땐 인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제대로 신경을 안 썼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무작위로 짜깁기하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논문도 써야 하는데, 석사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미리 있어서 감사하다. 

4. 독일 회사 취업기 - 워킹 스튜던트

2월 쯤 1학기 이후 휴식할 때 다음 학기는 뭐 대강 학기 하면서, 독일어 B1도 하고, 인턴십/워킹 스튜던트 잡을 찾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student job 구하기가 생각보다 많은 리소스를 필요로 했다. 

지원은 CV와 커버레터만 제출하니 간단했는데, 인터뷰를 위해서 다시 경험정리하고 영어로 말하기 연습을 하고, 해당 회사에 대해서 조사하는 등 면접 준비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운이 좋게도 서류 합격률이 나쁘지 않았는데, 덕분에 매주 다른 회사의 1~2차 면접을 보면서 수업 듣고 과제를 하려니 정말 몸이 많이 피곤했헜다. 그리고 면접을 보면서 독일의 면접 방식이 한국과 매우 많이 다름을 깨달았다. 이 부분은 한국/독일 양쪽에서 취업 준비를 해 본 사람만 캐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번에 정리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무튼, 정말 감사하게도 독일 시총 10위권의 대기업에서 워킹스튜던트를 시작했다. 전에 일했던 분야와 다른 산업의 회사여서, 졸업 후에는 다시 일했던 산업으로 돌아가야겠지? 하고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회사에서 투자해서 새로 키우는 분야가 내가 전에 일했던 분야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신사업 관련 업무를 해서 이 회사에서 졸업 후 자리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작 1달 일했지만, 직원끼리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회사의 복지혜택이 좋은 편이며, 굉장히 인터내셔널 한 곳이라는 걸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종종 독일/한국 사이 업무 방식의 차이를 느끼고 헤맬 때가 있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의 삶이 훨씬 행복해졌다. 

아마 이번 학기 최대 성과는 내적으로 좀 더 평온해 진 것과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인 것 같다. 

 

목표만큼 독일어를 공부하지 못한 것, 영어가 왠지 조금 퇴보한 것, 시간 내서 목표만큼 독서/운동/봉사활동하지 못한 게 아쉬운 학기였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을 후회로 맘에 담아 두지는 않는 걸로. 그렇게 벌써 독일 석사 생활 50% 를 지냈다!

주말과 공휴일을 붙여 다녀온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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