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20817 독학한 외국어로 사는 나 자신 관찰 일기

홍니버스 2022. 8. 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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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글쓰기나 문학 등 (한)국어 관련해서는 자신 있는 편이었다. 무슨 대회든지 상을 받았고, 수능 때는 백분위 99%, 회사에서도 세일즈/마케팅으로 근무했으니 한국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주언어로 산 지 1년이 넘었다. 심지어 그것도 어릴 때 이중 언어로 배운 게 아니고,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없이, 20대 중반 이후 독학으로 익힌 영어를 주 언어로 말이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대부분은 내가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일이 크고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다.

1. 내향인으로 오해(?) 받는다. 혹은 성격이 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외/내향인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본다. 학사를 할 때는 많이 헷갈리기도 했다. 어떤 행사가 있거나, 모이는 자리가 있다면 앞장서서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도 열심히 노는 나였다. 하지만 가끔씩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2-3일은 거뜬히 혼자 놀기 하며 보낼 수 있고, 혼자 여행 가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를 즐긴다. 그래서 아마 외향 55%/내향 45% 정도 경계선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모국어다보니 외향인의 모습으로 좀 더 보이는 것 같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내가 낯가리는 편이라고 하면 잘 안 믿었다. 그런데 영어로 말할 때는 그야말로 리액션 봇이 된다. 한국어일 땐 대화를 리드하기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한다면, 영어로는 머릿속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딱 맞는 표현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그만 하하, 오케이..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독일에서 나는 다소 shy 한 성격으로 보이는 것 같다. 혹은 정말로 여기선 내가 좀 더 내향적인 성격이 된 것일 수도 있다. 

2. 싸움닭이라는 반전

하지만 독일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다가 놀라는 때가 종종 있는데, 내가 토론 (혹은 말싸움?) 할 때이다. 사실 스몰 톡은 별로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라, 그들이 나를 shy Asian으로 보든 말든 그런가 보다 하고 만다. 하지만 일 관련해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집요하게 답을 얻을 때까지 질문을 한다. 반대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이유를 붙여서 왜 반대하는지 찬성할 때보다 열심히 설명한다. 반대를 할 때는 정확한 이유가 없으면 그저 감정적으로 하기 싫어서, 그 주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해석될 수 있으니까 '열심히'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토론을 시작할 때 그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한 반응을 지난 1년 동안 몇 번이고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당황하는 기색을 덮어주려 '그래 일단 이렇게 저렇게 하자.' 라고 대충 넘어간 것들이 역시나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이제는 그냥 불편하든 아니든 문제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짚고 가는 게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이 순간에는 내 영어가 괜찮은지, 이해 가능한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 더 잘 말하는 게 함정. 이때만큼은 한국어로 말할 때 성격 그대로 직설적으로 영어로 이야기한다. 

3. 한국어 퇴화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내 한국어 게 상당히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로 한국어가 퇴화됨을 느낀다. 종종 '교포도 아닌데 외국에서 1-2년 살다 왔다고 외국어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 이 비판받고 웃음거리가 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어를 쓰는 건 듣기/읽기는 매일 조금씩, 말하기는 격주에 한 번, 쓰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이다. 발화량과 작화량이 이렇게 줄다 보니, 점점 한국어를 할 때 내가 어색해지고 빠르게 언어능력이 감퇴함이 느껴진다. 아마 이전의 내 한국어에 대한 기준이 엄청 높아서 상대적으로 지금의 한국어가 훨씬 못한다고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30년을 넘게 해 온 모국어를 어떻게 잊어?'라는 얘기를 듣는다. 정확히 하자면, 당연히 잊은 건 아니다. 단지 표현이나 말하기의 흐름이 전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일정 시간을 다시 보내고 나면 회복되겠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퇴화였다. (주륵)

4. 간단한 표현들이 더 어렵다. 

나의 영어는 비즈니스/아카데믹 영어가 가장 나은 것 같다. 1년 동안 주로 해온 게 석사 공부와 인터뷰, 일하기이다 보니 당연히 그런 영어가 더 발달되었다. 오히려 간단한 일상생활 표현들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주방용품 이름을 잘 모른다. 아직도 fridge/freezer를 헷갈려서 종종 바꿔 말한다. 혹은, '면을 체에 걸러서 헹궈야 해'라고 해야 할 때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린다. 체가 뭐지? 거른다는 어떻게 얘기해야 해?

얼마 전에 영어로 된 영상을 보다가 'shedding'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문맥상 뜻은 '(오명을) 벗는'이었다. 나에겐 새로운 표현이어서 shed, shedding  하며 암기를 해야 했다. 이 표현을 미국에서 자란 A에게 말하니 'shed? 있잖아, 뱀이 허물 벗는 것처럼! squirm?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모양이야!'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그는 미국에서 그런 표현들을 기초 영어로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미지로 연상하고 제 2모국어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미국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새삼 부럽고 조금 씁쓸했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영어든 독일어든 그렇게 제2의 모국어처럼 느끼고 구사할 일은 없을 테니까. 

5. 대충 살자

얼마 전 회사에서 터키/불가리아 계 동료 직원과 대화를 했는데, 그녀의 영어가 너무나 듣기 좋아서 감탄했다. 표현이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말하기에 끊김이 없고, 인토네이션 또한 굉장히 좋았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영어를 외국어로 배웠음에도 그렇게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녀가 정말 부러웠다. 그녀는 독일에 온 지 거의 5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엔 나처럼 본국에서 학사 후 일을 했다가, 독일에서 석사 후 취업을 한 경우였다. 

그렇게 기간을 비교해보니, 단순 타인과 유창성 비교로 인해 자괴감에 빠진 나를 구해줄 핑계가 생겼다. 나는 영어를 20대 중반이 지나 스스로 공부했고, 그렇게 배운 언어를 주 언어로 해외에서 산 지 고작 1년이 되었다. 그 1년 전의 내 영어와 지금의 영어를 비교하면 그 사이 엄청난 발전도 있었다, 그 발전이 내 기대에 미치는지와 무관하게 말이다. 그러니까 나도 5년쯤 지나면 아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꾸준히 공부하며 쓰다 보면 분명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에 집중하면서 대충 살자. 하루하루는 열심히, 인생은 되는대로. 그렇게 결론지었다. 관찰 일기 끝.

주말에 다녀왔던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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