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석사 과정 중에 적응이 안 되어서 고생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팀플 할 때 문화 차이이다.
어느 방식이 더 좋다, 나쁘다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정말 문자그대로 적응을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경영 학사를 하면서 팀플을 1학기에 6개 이상 해본 적도 있고, 이후 세일즈/마케팅으로 근무해왔다. 때문에 국내에서 팀으로 일하는 건 적지 않게 해 보았고, 그 방식이 내겐 가장 당연하고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풍부한 국내 팀플 경험 때문에 독일에서의 팀플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 팀플에서는 결과의 질이 업무분배의 형평성보다 중요하고, 독일에서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우선 한국에서 팀플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역할마다 팀플에 있어서 중요도/기여도가 달랐다. 예를 들어, 팀장이 팀플의 방향이나 회의의 진행을 리드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그리고 PPT 제작하는 사람, 자료조사하는 사람, 발표자 (간혹 팀장이 겸임), 보고서 별도 제출 필요하면 만드는 사람 등으로 나눠진다. 각각 팀플에 절대 없어선 안될 역할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 (e.g. 팀장=필수 1인)과 덜 한 역할 (e.g. 자료조사=2~3명이 같이하면 1명이 좀 덜해도 퀄리티에 크게 차이가 안남) 이 있다. 수치로 굳이 표현하면 전체 팀플 중 20% 기여하는 역할이 있고, 35% 기여하는 역할이 있고, 그렇게 조금씩 차이가 난다. 자연스럽게 PPT에 보이든, 아니든, 업무 분배가 조금씩은 다르게 된다. 웬만하면 팀장이 되길 기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리고 자료조사 한다면서 온갖 핑계를 대고 잠수타는 프리라이더도 생긴다. 결국 그가 없어도 팀장이나 다른 멤버가 캐리해서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데 독일에서 팀플을 할 땐 모두 같은 정도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명이 팀플을 한다면, 각각 25% 씩을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더 일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양/정도로 일하도록 업무 분배가 된다. 지금 하는 3개 팀플 중, 교수님이 팀장이 필요하다고 지정한 1개 빼고는 팀장도 없다. 그리고 업무 분배로 역할을 나누는 게 아니라, 역할 안에서 나뉜다. 예를 들어서, 자료 조사를 한다고 하면 4명이 모두 자료조사를 한다. 그 이후 PPT를 각자 분량을 만들고, 각자 맡은 분량에 대해서 모두가 발표 한다.
몇 번 해보니, 최소한 이렇게 하면 프리라이더가 있을 확률은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팀일 뿐, 개인플레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준비를 안 하면 발표도 못한다. 혹은 억울하게 나 혼자 하드 캐리 했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단점은, 산출물의 맥락이 떨어질 것같다는 우려가 든다. 서사 있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 당연히 일부 부분이 내용이 더 많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아예 없도록, 모두가 같은 정도로 일을 하게끔 구성을 짠다. 4명 팀플을 예로 들면, 서론 1명, 본론 3명이 된다. 그런데 그 본론도 누구 한 명이 너무 부담이 크면 안 되니, 가능한 비슷한 소재들 3개로 나누는 것이다. 혹은 그 3명이 각자 하고 싶은 부분을 정한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 맥락이나 서사가 없다. 다만, 이것도 아직 성적을 받은 팀플이 아니라 내 우려일 뿐, 독일인 교수님께서는 어떤 평가를 하실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차이 때문에 처음에 업무를 나눌 때부터 나는 "뭐지? 왜 이걸 굳이 다 같이...??" 하고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A가 한국 회사와 미팅을 했을 때 일화가 생각났다. A는 독일 회사에서 일하는데, B라는 한국 회사와 파트너십 관련 미팅을 했었다. B회사에선 대표님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 회의에서 첫 번째 문화 차이는, 발표 중 질문하는 독일인 직원들과 나중에 대답하겠다는 한국인 대표님이었다. A네 회사 사람들은 그걸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발표 중 질문이 있으면 중간중간 질문과 토론을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발표는 발표대로 하고, 마지막에 Q&A 세션에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국인 대표님은 발표를 마친 후 Q&A때 다시 설명하겠다고 했는데, A네 회사 독일인들 입장에서는 이상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발표 말미에 Q&A 세션에서 독일인들이 질문을 했고 한국인 대표님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슨 질문이었냐면, 프레젠테이션 내 자료의 수치, 근거, 기준 등과 같은 발표 레퍼런스의 타당성을 묻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인 대표님은 썩 디테일한 대답을 하지 못하여, A네 회사 입장에서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하는 발표인데 내용을 모르는 게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지 이해가 갔다. 파트너십 때문에 하는 발표라면, 한국 중소기업 입장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대표님께서 진행을 했을 것이다. (팀장/발표) 다만 자료조사와 PPT 제작까지 그분께서 다 했을 것 같진 않다. 내가 겪은 직장생활을 토대로 추측하면, 아마 기획부서나 마케팅 쪽에서 제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도 내용을 알지만, 하나하나 디테일 까지는 알고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회의 참석했던 독일인과 한국인들이 이런 문화차이를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서로 갸웃거리다가 끝난 회의는 결국 파트너십 체결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흔히 한국에서 조직문화는 훨씬 수직적이고, 독일에서는 수평적이라고 한다. 일반화일 뿐 한국에서도 비교적 수평적인 회사, 독일에서도 수직적인 회사는 있다지만, 그래도 나는 팀플을 하면서 팀으로 일하는데 대한 두 국가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크게 차이 나는지 느끼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방식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독일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몸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감사하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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