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11119 독일인과 대화할 때 느낀 문화차이

홍니버스 2021. 11. 20.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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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독일에 입국한 후, 첫 몇 달간 말수가 적었다. 다른 사람도 눈치 채고 왜 그렇게 말이 없냐고 물어봤을 정도이니, 지금 생각해도 그때 말수가 지금보다 정말 적었다. 그러나 말을 안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한국인은 한식당에서 만난 분과 학교 프로그램에 있는 친구 빼고는 반년동안 한 명도 못 만났다. 즉, 지금까지 항상 외국인 (주로 독일인) 들이랑만 이야기를 하고 지냈다. 당연히 처음에는 더 대화에 열심히 참여해보려고 했지만, 어쩐지 대화의 맥이 끊기는 느낌이 계속되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무슨 이유일지 해결이 안 되니 대화에 흥미를 잃었다. 이유를 찾느라고 독일인들과 자리가 있으면 주로 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관찰했고, 나름의 이유를 찾은 뒤 조금 더 교류가 원활해졌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해석으로는, 한국과 독일의 대화할 때 문화차이는 대화의 목적/맥락이 감정교류(공감)인지 정보교환인지 나뉘는 것 같다. 똑같이 처음 만난 사이 간단히 스몰토크를 하며 알아가는 사이 라는 전제하에서다.


한국에서 처음 만난 사이 대화를 할 때는 여러가지 토픽을 던져보다가, 둘 사이 공통사가 있으면 그에 대한 감상이나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잘 모르는 직장동료와 여름휴가 후 탕비실에서 만났다면, 가볍게 휴가 다녀오셨어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만약 상대방이 본인이 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똑같은 장소에 다녀왔다면, 거기 너무 좋지 않아요? 거기는 갔었는데 맛이 없지만, 인테리어가 이쁘더라고요. 등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맞아요 맞아 하면서 공감을 중심으로 대화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일단 시작부터 쉽지 않다. 다양한 토픽을 선제시 해도, 단답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디 갔다 왔어? 독일. 이렇게 끝난다. 정보를 물어봤으니 대답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반대로, 할 말이 없어서 한국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제일 많이 질문받는 게, 인구 몇 명 사냐는 것이었다. 이건 진짜 여러 번 받았다. 보통 취미생활을 한두 개쯤 갖고 있는 독일이니, 취미로 무얼 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범위의 다양성 (e.g. 하키, 클라이밍, 칵테일 제조 등등) 이 한국보다 훨씬 넓으니 내가 모르는 분야 취미면 대화가 이쪽에서 끊어진다. 공통적으로 관심 있을 정보를 찾아서, 교류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이건 특히 독일인인 남자친구 A가 어떻게 사람들과 대화하는지 관찰하면서 느꼈다. 예를 들어서, 체코에 갈 생각이면 체코를 다녀온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럼, 체코를 다녀온 사람 혹은 체코 출신 친구는, 체코 가이드북 같은 설명을 한다. 개인적인 감상이 가미되는 정보다 한국사람과 대화할 때보나 덜하다. 정보를 주되, 코멘트를 한 방울 더하는 정도이다. 또 다른 예로는, A는 가끔 신기한 사실을 외우고 다닌다. 몇 가지 알고 있다가 어색한 사이나 사람들 모였을 때 주제로 던지기 좋다는 것이다. 

독일인들 사이 대화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난 뒤에는, 나는 한국에 관한 특이한 사실 (e.g. 한국식 나이문화, 특이한 음식) 몇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독일인 친구들에게 던져보았다. 혹은 나도 정보 위주로 물어보는 질문을 했다. (e.g. 주말에 이 주변에서 갈만한 추천 카페가 있니 등) 그럼 양질의 정보로 답이 온다. 그리고 이렇게 몇 번 정보교환성 대화를 거치다 보면, 같이 어디 가볼래? 하고 제안을 하게 되고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친목이 서서히 깊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는 내가 정말 답답하게 느껴지고 왜인지 이해가 안 됐다. 한국에서 특정 상황에서 느낀 감정을 위주로 대화하는 방식에 익숙했다가, 갑자기 대화 톤이 달라지니 적응을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특별히 그런 고민은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조금 더 친해진 독일 사람들의 따뜻함도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운 여름의 유럽 날씨. 겨울은 해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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