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토종 한국인이 본 독일 01. 독일에서는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

홍니버스 2024. 7. 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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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에 바탕한 주관적 생각입니다. 일반화는 지양합니다.*

독일에 오기 전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가 있다. 독일인은 낯선 사람에게 살갑지 않고,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꽤나 맞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주변은 둘러보면 내가 한 번이라도 어디선가 거치며 인사했던 수많은 독일인 중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친구가 된 독일인은 꽤 적은 편이다. 다만 그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1달에 1번~최소 분기에 1번씩은 만나서 이야기하며 깊게 교류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독일인이 차갑고 무관심해서라고 오해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런 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보통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끼리 친구 관계를 길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봤을 때에는 같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초쯤 만난 친구들끼리 그룹을 만들어서 오래도록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를 봤다. 즉, 나 같은 한국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들과 30대에 친구가 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 관계가 충분하고, 거기에 만족하며, 굳이 노력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더라도,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늘 새로운 친구들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각별히 더 친해서 더 자주 보는 친구가 있고, 적당히 교류하는 친구가 있고, 그룹 내에서만 마주치는 친구로 친구들도 우정의 깊이에 따라 분류가 되는 편인 것 같다. 10명의 친구가 있다면 가장 친한 친구 2명에게 50%, 나머지 친구들에게 조금씩 관심과 시간이 "차등 분배" 되는 식이다.

하지만 주변 독일인들 사이에서 본 친구관계는 조금 더 심플했다. 오래 된 친구 중 가장 친한 친구 한두 명은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 외 친구들은 비슷한 정도의 관계를 유지한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20% 정도 할당이 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관심과 시간이 "균등 분배" 된다. 즉, 친구 1명을 추가할 때마다 들어가는 나의 노력과 시간, 관심이 꽤나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면 대게 같이 자란 친구들과 친구 관계에 만족하고 지내는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점은, 만약에 그 친구 무리내에 괴짜스러운 친구가 있어도, 그 친구 역시 예외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친구 무리 중 좀 이상하다 (예를 들어서, 굉장히 불평이 많고, 친구 사이에도 사생활에 너무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서서히 나머지 친구들은 그 사람에게서 멀어질 것 같다. 누구 하나 나서서 저 사람을 왕따 하자! 하는 악질 적인 상황이 아니라, "아.. 걔는 나랑 좀 안 맞는 것 같아..ㅎㅎ..ㅎㅎㅎ" 하고 멀어지게 되는 식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본 독일인 친구 무리들은 그런 괴짜스러운 친구가 있어도 "아 걔가 좀 유난스러워, needy 한 면이 있지~" 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 조차 개인의 성격으로 존중이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잘못 (e.g. 금전적인 무언가라든지..)을 하지 않는 이상 친구 무리 내에서 아무튼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두 번째는, 개성은 존중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10대 때부터 이미 어떤 일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부분을 깊게 탐구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나는 그런 부분이 사실 대학교 학사 때가 되어서야 확립되기 시작했고, 사회 초년생 생활을 하면서 좀 더 명확해졌다. 그러니까, 한 25-27세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그게 17-21세 정도 사이에 이뤄지는 것 같다. 본인이 타고난 성격, 성향 등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독일사회에선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과제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부분이 정해지고 나면 범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저 사람은 저렇구나" 라는 까방권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개인마다 성격이 매우 다르고, 그 다름의 스펙트럼이 한국에서 만나던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 부분은 일종의 피로로 작용을 한다. 내가 만나본 한국 사람은 성격이 대충 10가지 정도로 나눠진다면, 독일에서는 그게 200가지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타인 입장에서 한 개인을 탐구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그렇다 보니 첫 만남에 누군가에게 선뜻 친절을 베풀기가 어렵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독일에 3년 살고 난 후 나는 낯선 이에게 함부로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섣불리 보인 친절 때문에, 이상한 사람이 꼬이기도 했고, 제대로 그런 사람을 분간해내지 못하고 휘둘린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어떤 사람을 서너 번은 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편이 되었다. 그렇게 해도 안전한 사람이다 느낄 때 되어서야 차근차근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은 조금씩 교류하게 되었다. 

결론, 독일인이 초면에 굳이 친절하지 않은 건 상대에 대해서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파악하는 데 서두르지 않는 건, 개인마다 성격이 매우 다른 독일 사회에선 누군가를 단시간 내에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인 친구를 사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들은 기존에 형성 된 친구 관계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운 친구에 대한 니즈가 낮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아주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본인을 보여주면 독일 사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초반에 인상을 주려고 오버하다간, 그것 때문에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기가 쉬운 것 같다. 다만 한 번 친구가 되면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되며, 굉장히 깊게 서로를 지지하는 우정을 다질 수 있다. 즉,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본인과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다 보면 독일에서도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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