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퇴사하고 독일/국내파 문과생 독일 취업

[독일 석사 후 취업] 02. 뜻밖의 취업

홍니버스 2024. 6. 2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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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링링... 수업도 근무도 없는 12월의 흐린 수요일, 휴대폰이 울렸다. 

"안녕, OO, 나 W인데, 혹시 J 하고 이미 얘기했어?"

안부인사도 건너뛰고 급하고 직설적으로 연락해 온 사람은 10월에 면접을 보고 불합격했던 팀의 매니저 W였다. 그 팀은 내가 가장 일하고 싶었던 팀이고, 이미 두 번을 지원했지만 불합격했던 팀이었다. 직전 지원의 불합격 사유는 부족한 경력이었다. W는 즉시 투입되어서 근무할 수 있는 10년 이상 경력자를 원했고, 나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면접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W는 근처 아는 팀의 팀장인 J가 곧 구인 예정이라며, 이미 J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긍정적으로 해두었다고 했다. J는 내게 곧 연락하겠다고 피드백했다고 했다. 

그런데 W의 팀에서 예상치 못한 결원이 생겼다. 그 결원은 팀 중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결원이었다. 해당 포지션은 3-5년 경력직 어쏘시에이트 레벨이었다. 

W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연락했다. 혹시 J가 이미 나를 채용 중일까봐, 휴무일인데 개인 휴대폰으로 바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독일 회사에서는 개인 휴대폰으로 휴무일에 연락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아직 J가 나에게 연락하기 전이었다. 그러자 그는 그럼 내일 미팅 요청을 할 테니 정식으로 더 이야기해보자며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때 난 4차까지 면접 본 곳에서 탈락하고, 한국계 기업 면접에서도 멘탈을 털리고, 아주 지쳐있었다. 그래서 W의 전화도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의 희망 고문이 될까 봐 희망을 품는 게 너무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W를 더 겪으며 알게된 건 그는 꽤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가 어떤 일을 하겠다고 했다면, 그건 이미 심사숙고 후 결정을 한 것이다.

전화를 했을 때 W는 이미 가능하다면 날 채용하고 싶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통화 뒤 우리는 정식으로 미팅을 두 차례 더 진행했다. 그 과정 동안 W는 업무 내용이 어떻게 될지, 급여를 포함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공식적인 채용 절차가 HR을 통해 진행되었다. 전체 프로세스는 3주 정도 걸렸다.

크리스마스 연휴 바로 전, 채용프로세스가 끝났다. 심지어 애초 논의했던 것보다 한 레벨 더 높은 연봉금액으로. 100번의 불합격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최종 합격이 가장 원했던 것이었다. 

지난 몇개월동안, 아니 몇 년 동안, 이 순간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행복할지 상상했었다. 막상 그게 현실이 되니 굉장히 피곤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버티던 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합격 후 새해까지 꽤 앓았다. 몸이 너무 아픈데 너무 행복했다. 기이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2023년이 끝났다.

3월 결혼하고, 11월 석사 논문을 끝내고, 12월 취업하면서, 너무도 완벽하게 감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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