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퇴사하고 독일/국내파 문과생 독일 취업

[독일 석사 후 취업] 01.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홍니버스 2024. 6. 9. 20:15

남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키지 않아 했다. 그렇지만 선뜻 반대 의견을 내지도 못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했고, 좌절했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봤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지금 독일 취업시장에서 난 그다지 매력적인 지원자가 아니야. 독일 회사 경험도 없고, 기술직도 아니고, 한국에서 했던 영업직은 여기선 독일어가 안되니 할 수도 없는 걸."

주변에서 본 문과 계열 비 EU 출신 외국인이 구직에 성공한 경우는, 독일어가 능숙하거나, 본국에서 독일 회사의 지사 정규직 근무 경험이 있거나, 회계/마케팅/SCM 등 본인만의 확실한 필살기가 갖춰진 스페셜리스트인 경우였다. 그 조건들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경우일수록 빠르게 취업을 했고, 하나라도 갖추고 있으면 아무튼 취업이 되더라.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독일 구직시장에서 인정 될 수 있는 건, 졸업 예정인 독일 석사 학위와 워킹스튜던트 경험뿐. 한국에서의 6년간 정규직 경험은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6년 동안 얻은 성실함, 도전적,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은 독일인 채용 담당자에겐 모두 검증 불가능한 허울일 뿐이었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로 표시하는 채점표에서 나는 세모와 엑스만 가득한 채점지를 받아 들고 있었다.

한 자리에도 수백명이 지원을 한다. 그중에서 굳이 이런 나를 채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더니... 모르겠어. 내가 제대로 못한 건지, 너무 부족한 지원자인 건지. 알잖아, 아무 소용없었던 거."

독일 구직시장에서는 비타민 B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B는Beziehungen의 약어인데, 관계라는 뜻이다. 아는 관계를 통해서 구직하는 게 한국 사람에겐 불평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 및 미주 국가들에선 꽤나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난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자리에서도 탈락을 했다. 그것도 여러 번! 그중 한 번은, 지원한 팀이 속한 부서 부장급 인사의 추천을 받아서 면접을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당 팀의 팀장은 내 경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해당 인력을 데리고 직접 일할 것은 팀장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의 상사인 부장이 추천한 사람이어도, 팀장의 결정이 더 중요했다. 그의 기준에 난 미치지 못했고. 그렇게 불합격했다.  

즉, 비타민 B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데, 내겐 그저 건너 건너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경험이 몇 번 더 쌓였다. 실패 경험들은 아주 무거운 겨울 솜이불 같았다. 겹겹이 내 위에 쌓였다. 무거워서 숨 막히고, 답답하고, 움직이기가 힘드니 움직이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짓눌려 있었다. 혹은 어딘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곳에 끼어버린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한국이든 싱가포르든 일단 독일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이 될 자리를 먼저 잡는 게 낫겠어. 그리고 2년쯤 후에 독일로 돌아오는 편이 차라리 빠를 것 같아. 이대로 여기서 구직하다간 그 2년이 그냥 구직만 하다 흐를 것 같아. 그리고 지금 내 커리어에서 그 시간을 독일에서 구직만 하며 기다릴 여유가 없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독일 유학 기간이 애초 목표한 것보다 이미 10개월 정도 지연되고 있었다. 거의 1년이었다. 아무리 6년의 경력이 있어도, 그 사이 단절이 길어지면 그 경력을 한국에서조차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지금 돌아가면 6년 정규직을 하고, 2년 반 유학 후 돌아온 사람으로 한국에서 구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독일에서 구직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6년 정규직 후, 3년 이상 단절이 있던 구직자가 된다. 즉, 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시간의 50% 이상이 단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아무리 한국에서라도 경력 인정을 요구하기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한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외국계 기업의 계약직 포지션을 목표하면 독일에서 구직하는 것보다 빠르게 구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적으로는 독일과 연결고리가 있는 회사에서 말이다. 그렇게 2년 정도 근무 하며 독일어를 더 공부해서 독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순간 그게 가장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독일 취업 시장에서 난 백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올 계획을 갖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