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20301 결과 중심의 사고, 과정이 궁금한 독일

홍니버스 2022. 3. 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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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사람들과 몇 번의 모임이 있었다. 독일에 온 지 9개월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나는 독일인들과 모임에서 어딘가 혼란스럽고 길 잃은 기분을 느낀다. 예전에도 몇 번 쓴 것처럼, 문화 차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행동 이상으로 심오한 것 같다.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소통의 방식도 다르고, 관심 있는 대화 주제도 다르다. 

이전에 느꼈던 독일인과 한국인 대화 방식의 차이점은, 독일인은 사실과 지식 중심으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고 한국 사람들은 경험과 감정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물론 사람 바이 사람 이므로 절대적인 일반화는 안됨!!

이번에 몇번의 모임 후 새로 느낀 점은, 독일 친구들은 과정을 궁금해하고, 디테일에서 감탄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 친구들은 So what? 결과가 뭔지,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느꼈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는 다이어트라는 같은 주제로 한국인, 독일인 친구들과 대화했을 때 대비적인 반응을 보고 느낀 점이다.

나는 다이어트로 거의 20kg 정도를 감량했고, 거의 10년째 다이어트 후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근육 운동을 하면서 체중은 좀 더 늘었지만 지금의 체중과 몸매가 생활할 때도 편하고, 옷 사는데 무리도 없고 여러모로 최적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실을 한국인 그룹에게 얘기했을 때 첫 번째 반응은 "와! 어떻게 했어?"라는 감탄이다. 굳이 일일이 디테일을 짚어 가면서 설명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1년 정도 걸렸어. 처음엔 무작정 적게 먹다가, 유산소 병행하다가, 다 빼고 나서는 근력 운동 하면서 키워왔어"와 같이 이야기하면 대단하다, 의지 있다, 와 같이 결과에 대한 칭찬과 감탄이 돌아온다. 반면 내가 무엇인가 1년을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면, "그래 수고했다. 애썼지." 정도의 심심한 위로가 돌아온다. 

반면 독일인 그룹에게 얘기했을때 첫 번째 반응은 "어떻게?"라는 질문이었다. 얼마나 걸렸고, 어떤 코스를 들었는지, 전문가에게 트레이닝받았는지, 식단은 어떻게 짰고, 어떤 운동을 했는지 와 같은 과정의 디테일을 궁금해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디테일을 다 풀면 또 지루해하기 때문에, 적당히 디테일을 던지면 거기서 토론거리가 생겨난다. 예컨대, 다이어트할 때 식단을 어떻게 짜야하는가? 와 같은 것이다. 이번 모임은 5명의 독일인이었는데, 이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과학자에 따른 연구 결과를 읽었다, 단백질만 먹은 건 어떤가 등등.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결과보다 어떤 일의 과정을 뜯어보고,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는가?라는 사실에 기반한 토론으로 대화가 흘러간다. 

나의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적당히' 멋지다, 훌륭하다 칭찬하고 북돋아주면 끝날 경험들을 종종 수술대에 올린 환자처럼 해부하고 토론하는 그들의 방식이 피로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졌었다.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 지만 이런 독일 친구들의 대화방식의 치명적인 단점은, 내가 이 분야 지식이 없으면 아예 참여할 수 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독일 친구들과 긴시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학,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는 게 없으면 그대로 할 말도 없어진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내가 너무 과정에 대해서 소홀하게 여기고 있던게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대학교를 졸업할 때 토익 점수 960점을 받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과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점수는 있지만 실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쯤 뒤에 제대로 영어 회화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관심을 가진 때를 나는 내가 영어를 '공부' 하고 할 수 있게 된 시작점으로 본다. 다른 예는, 나는 데이터 분석 준전문가 (ADsP)라는 자격증을 초창기에 땄었다. 당시 마케팅 직무를 지향하고 있었도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년이 조금 넘게 공부해서 딴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R 프로그램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 나는 그저 얼른해, 대충 해, 하고 결과 만들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닐까? 그런 내가 나중에 사회에서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하게, 나는 결과 중심의 사람이다. 성취할 때 즐거움이 크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과정을 경시하는 건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성취, 퀄리티 있는 결과를 만들고 싶다면 과정의 디테일도 중요하다.

독일 사회에서 지낸지 9개월이 되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배운 점 추가. 

내사랑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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