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20123 8개월차 유학생, 인종차별에 대한 단상

홍니버스 2022. 1. 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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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0년을 한국인이라는 메이저 집단으로 지내면서 인종차별은 그냥 흔히 들어본,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문제였다. 인종 차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폭력이 연루되거나 눈에 띄는 조롱 (e.g. 눈을 가로로 찢는 제스처) 이 포함된 것이었다. 하지만 곧 1년을 채워가는 인생 첫 해외생활을 하면서, 외국에서 마이너 집단으로 산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달라졌음과 그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깨달았다.

우선, 나의 개인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는 누군가의 능력을 그사람의 인종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특정 능력이 열등하다고 보는 게 두드러지는 인종차별이지만, 우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또한 무의식 속에 인종의 구분을 두고 있음에서 드러나는 행동과 언행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인종차별로 분류하기로 했다. 그러면, 이게 단순한 편견 (Stereotype) 인가, 인종차별 (Racism) 인가 구분이 모호한 부분이 생기는데, 이건 나도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와 일부러 하는 악의적인 인종차별은 이게 인종차별인지 판단한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듣는 사람이 문맥에 따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가 반복된다면 알려주는 것으로 대처하면 되고, 일부러 한다면 손절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내는 에너지도 에너지인데 머저리에게 쓰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새로운 정의에 따라서 내가 독일에서 지내면서 듣거나 겪은 것 중 인종차별로 분류 하는 것을 몇 가지 써보자면 아래와 같다.


"너는 아시안인데 영어를 잘하네. (칭찬이지만, 기저에는 아시아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판단이 깔려있음.)"

"넌 아시안이니까 나 수학 좀 가르쳐줄 수 있겠다. (나 수능에서 수학이 최저등급이었다.)"

"아시아 사람들은 정략결혼 하잖아. (뭔 소리야.. 진짜. 말도 안 되는 무식한 편견이 깔려있음.)"

"아시아에서 자료 구하기가 더 쉬운가봐.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너는 아시안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인종으로 능력을 평가절하함.)"


한편 내가 느낀 독일인의 인종차별 개념은 폭력이 연루되어 눈에 띄는 인종차별을 Racism 이라고 칭하고, 위와 같은 언행들은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로 여긴다. 나의 기준에 비해서는 좀 더 관대하다고 느꼈다. 물론, 이것도 일반화해서도 안되고 할 수 없는 경향이지만,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다. 그리고 일부분 이해는 간다. 나 또한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 때는 폭력과 같은 몰상식한 행동만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었다. 뉴스에 나올법한 악랄한 인종차별은 다행히 겪지 않았지만, 매일 발생하는 자잘한 인종차별적 발언들도 누군가를 지치고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고해서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여전히 내일도 나는 또 이런 종류의 작고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어? 뭐야, 기분 나쁜데. 이거 인종차별이야? 아니야?" 하고 헷갈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꼽을 줄지, 알려줄지, 손절할지 빠른 대처가 가능할 것 같다. 덤으로, 타인에게 이런 불쾌한 경험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도록 내 행동을 한번 더 점검하는 기준이 생겨서 다행이다. 아마 나도 과거에 잘 몰랐을 때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비슷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해외 생활 8개월차, 이렇게 인생의 배움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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