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홍

20221101 1년 3개월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홍니버스 2022. 11. 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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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장기 해외 체류에 쉼표를 찍었다. 2021년 6월 독일 생활을 시작한 이래 거의 1년 3개월 만에 드디어 한국에 다녀온 것이다.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코로나의 여파로, 독일에서의 삶의 기반을 다지느라 거의 1년 반이나 걸리고 말았다. 독일에 오기전 나의 해외 최장 체류기간은 겨우 2주였다.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길게 있으면,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2022년 2월 방학기간 한국행 비행기표를 사두었었다. 그 비행기 티켓을 사는 시점만 해도,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오르고, 입국 규정들이 완화되던 때였다. 그런데 2021년 12월 겨울 갑자기 코로나가 재유행을 하면서 해외 입국자 의무 격리가 발효되었다. 더군다나 나는 당시 내 독일의 삶이 굉장히 불안정 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1학기부터 끊임없이 부딪혀야 했던 문화차이와 미숙한 독일어, 향후 소득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체류기간을 늘리면 의무격리를 하는게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이런 상태에서 한국에 간다면 도망치는 것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기간에 가기로 마음을 바꾸고, 티켓을 취소했다. 대신 2월~3월 방학사이 나는 1)학생 조교 파트타임잡 2)독일어 A2 수강 3)독일어 A1 회화 수강 4)2학기 및 3학기 계획 을 하며 독일에서의 삶의 기반을 다졌다. 그 노력 덕분인지 2학기 개강 후 현재 일하는 곳에서 워킹스튜던트 잡을 구할 수 있었고, 현재 HR에 다음학기 계약 연장까지 요청을 한 상태이다. 경제적인/커리어 적인 부분의 불안이 해소되자 더 안정적으로 석사 및 독일어 공부에 신경쓸 수 있었다. 그 결과 1점대 평점을 유지하고 있고, 독일어는 B1 강의를 올해 내로 끝낼 예정이다. 결과적으로는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 방문하는 동안 시간을 온전히 휴가로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가기까지 생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한국행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사고 나진 않겠지? 정말 한국에 가는건가?' 라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다. 나도 내가 한국에 가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는데. 비행기 안에서 들떠서 잠도 거의 안잤고, 계속해서 비행기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했다. 터키 상공을 지날때까지도 어느 세월에 가는건가 답답했는데, 카자흐스탄을 지나고 중국 상공을 지나자 아시아 대륙 위에 있다라는 기분에 정말 들떴다. 본디 부정적인 감정에 의식적으로 신경을 꺼버리는 사람이라, 그리움이나 외로움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한국에 간다는게 정말로 신이났다. 

방문한 동안 항상 롤모델로 여기는 전전 직장 팀장님과 팀원들을 만났다. 팀장님이셨던 차장님은 보자마자 "어제 본 것 같아! 잘 지냈어?!" 라고 하셨는데, 순간 그 말에 눈물이 핑돌았다. 나도 모르게 조금 목이 메어서 "어제 아니에요.ㅠㅜ 어제라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차장님, 저 힘들었어요. 다들 너무 보고싶었어요." 하고 응석을 부리고 말았다. 차장님은 "아니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말 안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힘들었던거야. 으이구, 잘 왔어!! 고생했다." 하고 마치 내가 차장님 팀에 있던 그 때처럼 위로해주셨다.

엄마도, 10년지기 친구들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냐고 했다. 체감상 나는 한국을 떠난지 거의 3년 만에 오는 기분이었다. 독일에서의 삶이 내게는 너무 잦고 큰 변화의 연속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나 모든게 빠르다는 한국인데, 한국보다 내가 더 빠르게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감사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거슬리지 않았던 것들이 거슬리게 되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 영어로 대화하거나 일을 처리하는데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사라졌다.(여전히 영어 모국어 구사자와 대화할 때는 조금 긴장된다.)
  • 한국의 빠르고 친절한 서비스에 정말 감사하다.
  • 편리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언행에 예민해졌다.
  • 유토피아는 없음을, 한국과 독일 각국의 삶에서 뚜렷하게 장/단점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전보다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혹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껴진다. 
  • 자존감/자신감의 기반이 단단해졌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독일로 떠나기 전 날에 들었던 기대와 불안을 떠올렸다. 그 때 나는 '그나마 한국에서 사회 생활 하면서 모아놓은 돈만 다 날리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어차피 잃을 것도 그닥 많은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대다수가 안정기로 접어드는 인생의 때에 모험을 감행한다는 데에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설상 그 두려운 일이 일어나도 나는 나를 책임지고 살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한양대 맞은편 작은 음식점에서 대학생때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만 3년 동안, 매 주말 토/일 하루 10시간씩. 처음 시작했을 땐 시급 4,100원, 그만둘 때가 4,800원 정도 였다. 학비는 가계곤란장학금 or 성적우수장학금 (자랑) 및 학자금 대출로 냈고, 이 아르바이트로 36만원~45만원 정도 되는 월급을 벌어 용돈을 썼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나는 그 때의 감히 상상만 했던 현실을 살고 있다. 10년 사이 한국의 최저시급이 그 때로부터 2배가 되었지만, 나의 학생으로서 최저 시급은 5배가 넘게 올랐고, 졸업 후에는 그보다 훨씬 몸값을 높일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이런 변화를 만들며 쌓아온 근성와 내공이 어디서든 내 삶을 지탱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작 한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 한국도, 독일도 그대로 이지만 -독일 회사에서는 내가 휴가간 줄도 모르는 동료들도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 후, 나는 내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낀다. 이런 내적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다시한 번 감사한다.

2020년 IELTS를 보고 갔던 강릉, 2022년 독일 석사생이 되어 다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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